[LAYER 1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심새미 가야금 독주회 (2011.12.02 국립국악원 우면당)

김죽파 산조의 높은 예술성 재확인의 무대 

20년 전 본인이 심사위원장을 맡은 권위 있는 전국 가야금 경연대회에서 모법적인 좌우 수법, 정확한 음정 박자, 14세의 어린 중학생으로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내재된 감정까지 손끝으로 풀어내며 연주하여 칭찬과 함께 최우수상을 주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금같이 국악의 이해와 관심이 많지 않던 때라 그 학생 을 통하여 국악의 미래가 밝을 것 같은 기대로 기뻐한 적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 본인이 심사위원 이었던 KBS국악관현악단 협연자 오디션에서 유일하게 고등학생이 선발 되어 다시 한 번 미래에 대한 희망과 즐거움을 안겨준 연주자가 바로 심새미 선생이었습니다. 심선생은 9세에 가야금을 시작하여 초등학교 5학년 때 콩쿠르에서 초등부 최우수상을 타기도한, 예술인에게 가장 중요한 조기교육의 표본과도 같은 연주자입니다.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교육과정을 거치 면서 가야금의 문화적인 자양분을 모태로 자신의 개성과 미학을 직조(織造)해내는 연주자가 되도록 노력해왔습니다. 그 결과 권위 있는 전국 우륵 가야금 경연대회에서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상을 받기도 하였습 니다. 심선생은 이미 5회의 가야금 독주회를 가졌으며 동 연배로서는 보기 드문 질 • 양 양면에서 기록적인 연주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간 가야금 음악 전 장르의 독주회를 하였으며, 최옥삼류, 성금연류 전바탕을 연주하여 호평을 받았고 이번 김죽파류 전바탕 독주회를 함으로서 세유파의 산조를 완주한 연주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연주될 김죽파류는 1978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구성미가 뛰어난, 감정의 표출과 절제를 균형 있게 고루 갖춘 산조로 다채로운 조의 변화와 섬세한 농현이 특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조의 꿋꿋한 남성적인 농현, 경드름의 흥청거리는 농현, 강산제의 화사하며 경쾌한 농현 등 조에 따른 적절한 농현의 절묘한 표현은 조기교육 실천과 그간 축적된 심선생의 노력의 결과이며 이는 타고난 예술성과 감정적 설득력을 갖춘 연주자라는 것을 확인케 할 것입니다. 다채로운 수상경력과 예술적 열정으로 끊임없이 정진하는 심새미 선생의 독주회가 새로운 경지의 면모 를 보여줄 것을 기대하며 오늘 자리를 함께한 청중들이 김과 산조의 높은 예술성을 재확인하는 독주 회가 되기를 기대 합니다. 

2011년 12월 2일 한양대학교 석좌교수 이재숙


초월성을 얻는 길, 산조(散調) 

나의 가야금 산조 연주를 들은 외국인 친구의 첫 반응은 '초월적 TRANSCENDENTAL’ 이라는 한 마디 였다. 오랫동안 국악을 하고 있던 내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반응이 있다. 일반인에게 국악은 그저 지루하고 고루하게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 단 한번도 '초월적' 이라는 개념을 국악과 함께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다시금 산조라는 음악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초월적인 음악.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는 음악. 그것이 바로 산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선험적 요소와 후천적 경험의 융합체, 산조

A priori + a Posteriori = Transcendenz 

성금연류로 처음 가야금을 시작해서 고등학교에서는 최옥삼류를, 그리고 석사과정에서 김병호류를 배우고 박사과정에 들어와서 김죽파류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유파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의문이 떠오르기도 했다. 마치 수집하듯이 여러 유파를 거치는 것이 국악인인 나에게 어떠 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였다. 한 사람의 평생이 담긴 산조를 짧은 시간에 공부해서 고유의 호흡이나 음악 전체를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흉내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산조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산조는 개인의 선험적인 요소와 후천적인 경험이 융합된 음악이다. 따라서 내가 산조를 연주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선험적인 요소가 새로운 선험과 경험의 복합체와 만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에 따라 각 유파의 창시자들의 삶과 그들이 생활했던 시대의 자료를 탐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개인의 삶의 궤적, 또는 미시적인 역사적 사실, 과거 기록의 확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선험과 경험이 어떻게 어우러져 하나의 흐름, 즉 유파를 형성하게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전통의 계승과 보전, 창조의 모범 

산조는 본래 정형화된 음악이 아니다. 그러나 체계적인 전수 및 보존을 위해서는 채보를 비롯한 어느 정도의 정형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정형화가 산조의 보존과 전수에 크게 공헌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정형화로 인하여 산조가 정제되고 굳어버린 음악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산조라는 음악 자체가 형성된 지 100년 남짓 된 분야이기 때문에, 다음 100년, 그리고 또 다음 100년을 위해서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김죽파 산조의 형성과정은 어떤 방향을 제시해준다고 할 수 있다. 초기 김죽파 산조는 가야금병창에서 선율을 따오거나 부분적으로 자신의 가락을 넣는 등 자신의 색깔(개성)을 나타내려는 시도는 하기는 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그의 스승인 한성기의 조현법과 변정, 선율, 조구성 등의 음악적인 골격을 가감 없이 전승하고 있었다. 이러한 김죽파 산조는 중기에 접어들면서 한성기에게 사사받은 대로 전승하던 단계를 지나 점차 한성기의 선율을 일부 변형하고, 다른 류 즉 심상건 • 김종기 • 김윤덕 • 성금연 등 선배나 후배의 산조일지라도 좋은 점은 부분적으로 그의 산조에 적절히 수용하였다. 조현법에서도 심상건의 영향으로 겹청 조현법인 12현 5괘법을 받아들여 한성기산조에서 부족한 저음 음역을 확대하였다. 이 무렵 새로운 악장과 선율을 창작하여 기존의 산조에 첨가하기 시작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은 김윤덕 성금연산조 단모리의 영향으로 세산조시 악장을 산조 마지막 악장으로 채용하였다는 것과 새로운 선율 즉 진양조 우조 선율을 중모리 우조계면조로 악장만을 바꾸어 새로이 창작하여 첨가함으로서 다른 산조에 없는 독특한 중모리 우조선율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렇듯 새로운 선율의 첨가로 인하여 김죽파 초기에는 스승인 한성기의 선율을 거의 가감 없이 연주하였지만, 중기에 이르러 한성기 선율의 비율이 약 50% 감소되었다. 1978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김죽파는 1989년에 작고할 때까지 활발한 연주활동과 함께 제자 양성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렇게 고유의 음악세계가 정리되면서 많은 선율을 창작하여 자신의 산조에 첨가하였다. 이러한 김죽파의 창작은 필요에 의해 창작되었거나 변화한 의도적인 창작과, 공연 도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즉흥적으로 창작된 즉흥적 창작으로 크게 구분될 수 있다. 후기에 완성된 김죽파 산조는 김죽파가 창작한 선율이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러나 초기에 한성기로부터 물려받은 선율 역시 41%라는 큰 비중으로 남아있다. 따라서 김죽파산조는 순수한 김죽파만의 창작이 아니라, 전통적인 산조를 부분적으로 수용 계승한 것이다. 즉 일생을 두고 전통 산조에 자신의 창작성이 오랜세월 융합하여 이룩된 것이다. 이같은 김죽파 산조의 발전과정은 우리 민속음악의 발전과정의 전형적인 하나의 예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초월적 지점으로 이끌어주는 다리, 산조 한 사람이 평생을 노력해도 일가를 이루기 어려운 산조라는 음악을 단 3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공부한다는 것이 단순한 흉내나 경험에 그치지 않으려면 나 자신의 선험적인 요소와 경험을 담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나 인종, 성장과정이나 경험에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자신도 모르는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초월적’인 지점을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아무런 맥락 없이 나 자신을 내보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한 개인의 선험과 경험이 초월적인 지점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바로 그러한 매개체, 초월적인 지점으로 나를 이끌어 주는 다리, 그것이 산조이다. 비록 초월적인 지점으로의 도달을 구현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러한 시도 자체를 실행 하는 것, 그리고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연주를 통해 흘러나오는 내 모습을 이번 연주를 통해 조금이나마 공유 하는 것이 초월성을 가진 산조라는 음악으로 한걸음씩 다가가는 과정이라 생각되기에 오늘의 연주로 조금 더 발전 되는 나를 기대해본다.

심 새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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